1.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신 하느님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 내셨다. 땅은 아직 모양을 갖추지 않고
아무 것도 생기지 않았는데, 어둠이 깊은 물위에 뒤덮여 있었고,
그 물 위에 하느님의 기운이 휘돌고 있었다. 창세기 1, 1∼2
하느님께서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 곧 처음과 마지막이다."( 요한 묵시록 21, 6)
라고 말씀하셨으며, 당신의 이름을 묻는 모세에게
"나는 곧 나다"(출애굽기 3, 14) 하고 대답하신 분이십니다.
한 처음에 아무 것도 없는 가운데 하느님께서만 스스로 존재하셨습니다.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시며 모든 것을 다 갖추고 계신 그분은
영원으로부터 영원토록 완전한 행복을 누리시는 분이십니다.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 처음과 마지막이신 분! 당신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어
"나는 곧 나다" 라고 자신 있게 말씀하실 수 있는 분!
그분은 모든 것을 다 갖추고 계시기에 당신께서 누리고 계신 온 행복을
사람에게 나누어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가. 하느님께서는 말씀으로 세상 만물을 창조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아무 것도 없는 가운데서 당신의 전능으로,
"말씀"으로써 우주 만물을 만드셨습니다.
시작도 마침도 없으신 영원하신 하느님께서 "말씀"으로 우주 만물을 만드실 때에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를 한정된 공간과 시간에 살고 있는 사람의 머리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조차도 없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 태어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너무나도 오랜 세월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이 세상을 만드신 그 진행 순서를
정해진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의 시간에 맞추어 날짜별로 적도록 허락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겨났다.
그 빛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다. 하느님께서는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빛을 낮이라,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 이렇게 첫날이 밤, 낮 하루가 지났다.
¶하느님께서 "하늘 아래 있는 물이 한 곳으로 모여 마른땅이 드러나거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마른땅을 뭍이라, 물이 모인 곳을 바다라 부르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
¶하느님께서 "땅에서 푸른 움이 돋아나거라!
땅 위에 낟알을 내는 풀과 씨 있는 온갖 과일 나무가 돋아나거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이리하여 땅에는 푸른 움이 돋아났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
이렇게 사흗날도 밤, 낮 하루가 지났다.
¶하느님께서 "하늘 창공에 빛나는 것들이 생겨 밤과 낮을 갈라놓고
절기와 나날과 해를 나타내는 표가 되어라! 또 하늘 창공에서 땅을 환히 비추어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만드신 두 큰 빛 가운데서
더 큰 빛은 낮을 다스리게 하시고 작은 빛은 밤을 다스리게 하셨다.
또 별들도 만드셨다. 하느님께서는 이 빛나는 것들을 하늘 창공에 걸어 놓고
땅을 비추게 하셨다. 이리하여 밝음과 어둠을 갈라놓으시고 낮과 밤을 다스리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 이렇게 나흗날도 밤, 낮 하루가 지났다.
¶하느님께서 "바다에는 고기가 생겨 우글거리고 땅 위 하늘 창공 아래에는
새들이 생겨 날아 다녀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는
큰 물고기와 물 속에서 우글거리는 온갖 고기와 날아다니는 온갖 새들을 지어 내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 하느님께서 이것들에게 복을 내려 주시며 말씀하셨다.
"새끼를 많이 낳아 바닷물 속에 가득히 번성하여라.
새도 땅 위에 번성 하여라!" 이렇게 닷샛날도 밤, 낮 하루가 지났다.
¶하느님께서 "땅은 온갖 동물을 내어라! 온갖 집짐승과 길짐승과 들짐승을 내어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온갖 들짐승과 집짐승과
땅 위를 기어 다니는 길짐승을 만드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 창세기 1, 3∼25
나. 하느님께서는 특별히 사람만은 손수 빚어 만드시고,
이렛날에는 모든 일에서 손을 떼시고 쉬셨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 또 집짐승과 모든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시고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내려 주시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를 돌아다니는 모든 짐승을 부려라!" 창세기 1, 26∼27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기로 작정하시고,
진흙으로 빗으시어 사람을 만드신 후 당신의 입김을 불어넣어 숨을 쉬게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한 분이시지만 성부· 성자· 성령 삼위를 가지고 계시기에
서로서로 충분한 사랑을 나눌 수 있으셨으며,
그로 인해 외롭거나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치 않으신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사랑 자체이시기에 넘치는 사랑으로
당신께서 누리고 계신 모든 행복을 나누어주시고자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당신의 모습을 닮은 사람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즉,
우리의 삶은 우리 스스로가 그 어떤 목적을 위해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행복을 누리고 계신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자비하심으로
무상으로 주어진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하느님께서 누리고 계신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행복을
받아 누리기 위해서 세상에 태어났기에 죽을 몸으로 태어나
고통과 부족함 속에서 살아가는 이 세상 모든 사람 안에
"영원히 살고 싶고 참된 행복을 누리고 싶은 끝없는 욕망"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다.
하느님께서는 엿샛날까지 하시던 일을 다 마치시고,
이렛날에는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새로 지으시고
이렛날에는 쉬시고 이 날을 거룩한 날로 정하시어 복을 주셨다.
하늘과 땅을 지어내신 순서는 위와 같았다. 창세기 2, 1∼4
첫날 - 빛. 이튿날 - 하늘과 땅.
사흗날 - 뭍과 바다. 풀과 과일 나무.
나흗날 - 해와 달과 별.
닷샛날 - 바다에 고기, 하늘 창공 아래에 새들.
엿샛날 - 온갖 동물(집짐승, 길짐승, 들짐승)과 사람.
이렛날 - 쉬심. 거룩한 날로 정하심.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신 하느님"께서는 사람과 같은
물질로 이루어진 분이 아니시고 신령한 분이시기에 쉬시거나 잡수실 필요가 없는 분이시지만,
사람은 물질로 이루어진 육신을 지니고 있기에 움직이거나 일을 하면
피로를 느끼게 되어 쉬어야 하며, 유한한 물질로 이루어진 사람의 육신은
계속 새로운 물질을 공급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먹어야만 합니다.
성경에 "하느님께서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만드시고
이렛날에 쉬셨다." 라는 말씀을 기록하게 하신 것은
"하느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고 오로지 "육신을 지니고 있는 사람"을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분께서 바로 "나 한 사람"을 위해서 그렇게 해주시지 않았다면
오늘날 내가 어찌 일주일의 하루를 마음 놓고 편히 쉴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의 존재 자체까지도 부인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하느님에 관하여 기록된 성경 말씀을 보고 이러한 말씀들이 마치도
하느님을 위하여 존재하고 있는 것인 양 착각하고
스스로 자신을 똑똑하다고 생각하여 그 똑똑한 머리로 따지기를 좋아합니다.
"과학적으로 볼 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며칠 만에 창조되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그 성경에 기록된 말들을 보면 이치에 맞지 않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 말들이 맞는다면 과학적으로 증명해 보아라!" 라고 말하며 의기양양하게 돌아섭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똑똑하다고 생각하여
"자기 자신"을 위하여 마련해 주신 이 모든 것들을 외면하므로
영영 "자기 자신을 죽음의 길로 몰고 가는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과학"이란 무엇입니까?
국어사전에 보면 "어떤 영역의 대상을 객관적인 방법으로, 계통적으로 연구하는 활동,
또는 그 성과의 내용. 특히 자연 과학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음." 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과학적"이라 함은 "①과학의 면에서 본 정확성이나 타당성이 있는 (것).
②과학의 본질에 근거한 (것)." 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과학"이라는 것은 원래 주어져 있는 상태 그 안에서
"물질이나 형태나 거기서 일어나는 현상"을 "사람에게 주어져 있는 능력"을 가지고
알아내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기에 과학은 아주 적은 범위에서부터 시작하여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 영역을 넓혀 나아가게 됩니다.
몇 천 년 전에 과학과 지금의 과학을 비교해 보십시오!
몇 백 년 전에 과학과 지금의 과학을...
몇 년 전에 과학과 지금의 과학을 비교해 보십시오!
또 앞으로의 세상을 상상해 보십시오!
끊임없이 변화되고 발전되어 가고 있질 않습니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되고 발전되는 "과학"이란 바로
사람이 상상할 수조차도 없는 그 오랜 세월 동안 "하느님께서 사람을 위해서 마련하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사람에게 주신 머리와 눈과 손으로 알아내고
존재하는 것을 가지고 무엇인가 새롭게 만들어 내어
사람에게 유익하게 쓰여 지도록 하는 학문"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두 주먹을 눈앞에 가까이 대고 있으면 자신의 주먹밖에 볼 수 없듯이,
무한하신 창조주이신 하느님에 비해 먼지만도 못한
아주 작은 존재인 사람의 능력으로 이루어 낸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것"을 중요시하고
그것들만을 보려 한다면 무한히 크신 하느님을 절대로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무한히 크신 "나는 곧 나다." 라고 말씀하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습을 닮게 손수 만드신 너무나도 귀중한 존재이며
"하늘에 계신 분의 숨(영혼)"과 "땅에서 취한 흙(육신)"으로 만들어진
"하늘과 땅의 결합체"입니다.
¶야훼 하느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코에
입김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창세기 2, 7
영혼 : 신령하여 불사불멸하는 체로써 육신과 합하여
그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즉 하느님의 입김입니다.
육신 : 진흙으로 빚어진 체로써 영혼과 합하여 그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 "하느님의 입김인 영혼"이 떠나가면 본래의 모습인 흙으로 되돌아간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위해서 우주 만물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 말씀으로 만드시고
특별히 사람만을 당신의 모습을 닮게 만들기로 작정하시고
진흙으로 빚어 육신을 만드시고 당신의 입김을 불어넣으시어 숨을 쉬게 하시어
에덴이라는 동산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이 세상 조물 중에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조물"이 어디에 또 있습니까?
그 어떤 조물이 "하느님의 입김"으로 인해 살아 숨을 쉬고 있습니까?
이는 사람이 하느님으로부터 아주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고,
하느님 편에서 볼 때에도 아주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그토록 귀한 존재인 사람이 스스로 자기 자신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고
스스로가 자신을 "짐승에게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며 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
자기 자신이 "짐승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환생)을 하고 있다면 그 얼마나 슬픈 일이며,
자기 자신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면???
자기 자신이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는지,
왜 살아가야 하는지, 무엇을 목적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다면 그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입니까?...
하느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당신 모습을 닮게 만드셨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본성에 적합한 지능과 의지와 자유를 주셨을 뿐만 아니라,
"초성은혜"와 "과성은혜"로 신성하게 꾸며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느님께서 첫 번째 사람에게 주신 "초성은혜"는
은총(하느님께 공으로 받는 사랑으로 영생을 얻어 무한한 행복을 누리기에 필요한 것)과
성덕인데 이것으로 첫 번째 사람들은 하늘나라 영원한 행복을 누릴 자격을 얻었습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첫 번째 사람에게 주신 "과성은혜"는
사욕 편정이 없고, 지혜가 밝고, 고통이 없고, 죽지 아니하는 은혜입니다.
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다.
¶야훼 하느님께서 아담을 데려다가 에덴에 있는 이 동산을 돌보게 하시며 이렇게 이르셨다.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따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만은 따먹지 말아라.
그것을 따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는다." 창세기 2, 15∼17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자기 스스로 영원한 삶과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의지"를 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공으로 주셨지만
자기 스스로 선택하여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영원한 행복을 얻어 누리는 기쁨을 맛보게 하기 위해서
크나큰 사랑으로 사람에게 "자유 의지를 주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자유 의지는 참으로 소중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자유 의지를 주시지 않았다면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사람에게 자유 의지가 없다면 사람은 고유한 한 인격체가 아닌
하느님의 꼭두각시에 불과할 것입니다.
사람이 하느님의 꼭두각시라면 모든 사람은 다 하늘나라에서
모든 것을 다 얻어 누리며 살 수 있었겠지만,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이나 "슬픔"이나 "괴로움"이나 "즐거움"이나
"사랑하는 감정"까지도 느끼지 못하고, 그저 무의미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자유 의지"는
참으로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민족 복음화를 위한 미사를 드리는
전교주일일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민족 모두에게 당신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은총을 듬뿍 내려 주시어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가장 좋은 것,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얻어
영원한 아버지의 집으로 잘 돌아갈 수 있게 하여 주시기를 간청하며
전교주일 아침 인사를 올립니다.
오늘도 성령 안에서 참으로 행복한 날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