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람 아담과 하와는 바로 "나"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창세기 2, 16~17) 라고 말씀하셨는데, 뱀이 “하느님께서
- ‘너희는 동산의 어떤 나무에서든지 열매를 따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는데 정말이냐?” 하며 ‘거짓을 섞어’ 은근히 그리고 부드럽게
사람에게 접근하며 질문하니까 사람은 “우리는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를 먹어도 된다.
그러나 동산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 열매만은, ‘너희가 죽지 않으려거든 먹지도
만지지도 마라.’ 하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라고 ‘거짓을 섞어’ 응수했습니다.
짐승들 중에서도 땅을 가장 많이 점유하고 있는 뱀과 짐승에 비겨
땅을 가장 적게 점유하고 있던 사람이 ‘거짓’으로 점차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뱀이 다시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라고 유혹했는데,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
그래서 여자가 열매 하나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자,
그도 그것을 먹었다. 그러자 그 둘은 눈이 열려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다.’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과 그의 아내에게 가죽 옷을 만들어 입혀 주셨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땅에 가장 가까이 붙어 있는 ‘유혹하는 자인 뱀’은
사람에게 당신의 사랑과 생명과 영원한 행복을 나누어주시기 위해서
하늘과 땅과 사람을 만드신 ‘하느님과 사람을
동등한 입장에서 비교하도록 사람을 유혹’했습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과 자기 자신을
동등한 처지 인양 비교’를 하며 살고 있는지....
그 결과는 자기들 스스로 자기의 알몸을 부끄럽게 여겨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앞을 가리게 되고, 죽음의 옷인 가죽옷을 입고,
온갖 과일 나무가 무성하고 아무도 해치지 않는
평화로운 땅에서 쫓겨나 땀을 흘리고 고생하며 살다가 죽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입혀 주셨다는 ‘가죽옷’이란 어떤 옷입니까?
그건 바로 ‘짐승의 옷’입니다.
손과 발 모두를 땅에 대고 살아가다가 죽어 흙이 되는 짐승!
그 ‘짐승의 옷을 입은 사람’은 이미 ‘사람이 아니라 짐승’인 것입니다.
창세기 6장 3절에 보면
“사람들은 살덩어리일 따름이니, 나의 영이 그들 안에 영원히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들은 백이십 년밖에 살지 못한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옛날 아담과 하와에게 하셨듯이
지금 “나”에게도 똑같이 그분은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그 옛날 아담과 하와에게 뱀이 나타나 유혹했던 것과 똑같이
‘땅에 가장 가까이 있는 것들’은 항상 ‘나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그 나무!
생명이 있는 하늘과 맞닿은 땅에서
죽음이 있는 땅으로 넘어가는 경계선에 서 있는 그 나무가...
' 나를 죽음에 이르도록 유혹하는 뱀’ 은
‘영원한 삶이 있는 하늘을 등지고
죽음이 있는 땅의 것을 다 가지려는 욕심’ 입니다.
그러한 욕심을 가지고 “자신의 온 몸을 땅의 것에 매어 두는 사람”은
바로 뱀의 유혹에 빠져 ‘따먹으면 죽게 되리라.’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먹는 사람”입니다.
그가 땅의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므로 "죽으면 땅이 되는 짐승"의 옷을 입고,
짐승과 같이 영원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